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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

김소연, 있고 되고

by kimbook 2012. 6. 19.

있고 되고

 

김소연

 

홍옥이 있었지

우연히 만난 농부가 건네준

 

강물에는 구름이 천리강산도里江山圖를 펼치고 있어

그림의 귀퉁이를 접는 돌 하나

빗방울들을 태운 채 정박해 있지

 

거위가 우점준雨點으로 삼박삼박 걸어오고 있어

저 걸음걸이를 필사한 예술가들을 이끌고

구석구석 참견을 하지

 

모든 것들이 춤을 추고 있어

음악은 없지

바람은 있지

 

있는 것들이 오랫동안 그렇게 있을 때

우리가 기다리던 모든 것이 되지

 

연둣빛 메뚜기들이 풀밭에서

팝콘처럼 팡팡 튀어 오르고 있어

나는 천천히 퍼져 나가는

등고선이 되지

 

빗소리가 배낭에 닿지

어디선가 군불 냄새가 다가왔고

나는 배고픈 사람이 되지

 

배낭 속엔 홍옥이 있지

우연히 만난 사람에게 건네야지

 

빨갛고 동그란 우주를 손에 들고

어리둥절해진 한 사람은

늠름한 사과나무가 되었으면

 

---김소연 외, 2012 현대문학상 수상시집, 오키나와, 튀니지, 프랑시스 잠 외, 현대문학(2011년 12월 9일)---

 

*과일 한알의 기쁨을 알지.

 도래기재,

 亭子에서 만난 청주에서 오신 어르신부부,

 저녁도, 아침도,

 그리고, 복숭아 한알씩……

 우리는 배낭에 지고

 구룡산 넘어 곰넘이재까지

 참 행복한 山行을 할 수 있었지.

 

 '사과' 건네며

 '謝過' 하는 날 있지.

 그런 날을 위하여 나는,

 정말 '늠름한 사과나무가'가 되어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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