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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

문충성, 병든 사랑

by kimbook 2012. 10. 3.

병든 사랑

 

문충성

 

어버버어버버…… 어느 말몰레기 비바리는 두 손

맞대고 뺨에 옆으로 대어

잠자는 흉내 내며 사랑했다고

어버버어버버……  볼록 나온 배 가리키며

침 흘리며 질질

바보 웃음 지으며

어버버어버버……  무슨 말 하는 것일까

어멍 아방도 어시 혼자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우리 동네 곳곳을 왼발 절며 절룩절룩

왼손 못 쓰는 이 말몰레기 비바리는 누구와

사랑을 한 것일까 말은 못하지만

어버버어버버……  웃으며 손짓으로

사랑해서 애 뱄다고

어디에 살고 있을까 절룩절룩

한 달도 못 되어 어디론가 사라졌다

애 아빠 될 사람이 육지에서 온 사람이라느니

죽었다는 소문도 돌았다 성도 이름도 모르는

말몰레기 비바리여! 과연 죽었을까 4·3 터져

한창이던 때 60년도 더 지나갔는데

하늬바람은 섬을 뒤엎을 듯이 불어오는데 아아!

그 바람 속 살아오는 소리 절룩절룩

어버버어버버……  어버버

 

---문충성, 허물어버린 집, 문학과지성 시인선 396, 문학과지성사(2011년 8월 1일)---

 

*우리동네도 '누님' 있다.

 '어버버어버버'는 아니고

 늘, 머리수건을 쓰고 다닌다.

 사랑을 했다고 심하게 표내고 다닌 적 있다.

 

 여름 어느 토요일 

 국민은행 자동화코너에서

 나를 심하게 실망시킨 적 있다.

 '누님'의 향기가

 내 콧구멍 용량을 너무 초과했다.

 

 요즘, 그 '누님' 보이지 않는다.

 어디로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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