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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

김기택, 두 눈 부릅뜨고 주먹을 불끈 쥐고

by kimbook 2012. 11. 16.

두 눈 부릅뜨고 주먹을 불끈 쥐고

 

김기택

 

내 성질 같았으면 그 자리에서 몇 놈은 죽어 나갔지

 

서 있는 것조차 힘들어 보이는 구부정한 노인네가

마른침을 튀기며 앙상한 주먹을 흔들고 있다

불의를 보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는

한 번 한다 하면 대가리가 두 쪽이 나도 하고 만다는

저 주먹은 늙은 가죽 안에서 파르르 떨고 있다

지팡이가 받쳐주지 않으면 당장 꺾일 것 같은 관절에 기대고 있다

 

하룻밤에 천 미터 봉우리를 너끈히 오르내릴 것 같은 팔다리들은

이두박근 삼두박근 대흉근 초콜릿복근 들은

다 회의 중이고 운전 중이고

열 번을 전화해도 계속 통화 중이고

돈이 왔다 갔다 하는 급한 일 때문에 잠시도 한눈 팔 겨를이 없고

3차까지 갔다가 새벽에 대리운전으로 들어가 잠깐 눈 붙이고 나와서 사우나 하느라 촌음이 아까운데

 

이런 놈들한테는 말로 할 것도 없어

대갈통이 깨지고 다리몽둥이가 분질러져 봐야 세상 무서운 걸 알지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있다는 정의와 진실은

어르신을 앞에 두고 전철 좌석에 버젓이 앉아 있는 학생 앞에서나

틀니가 빠지도록 큰소리치고 있다

 

---김기택, 갈라진다 갈라진다, 문학과지성 시인선 417, 문학과지성사(2012년 10월 10일)---

 

*할배요,

 오늘 무슨 즐거운 일이신지

 약주가 과하십니다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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