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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

이영광, 하지만

by kimbook 2014. 1. 3.

지만

 

이영광

 

고독이 안되자 그는 삶을 물어뜯었다

사람이 안되면 사람을,

진심에 지피면 진심을 무찔러야 했는데

삶을 쓰러뜨렸다

죽음이 안되면 죽음을 여의어야 했는데

삶을 버렸다

 

하지만, 두들겨 패고 저주하고 내쫓아도

기른 개처럼,

삶이라는 거지가 어디 가던가

 

그는 약하고 포악하다

만졌는지 안 만졌는지도 가물가물한데

물장사 십년에 짝젖이 짝젖으로 늘어진

마담도 곯아떨어진

새벽이다

 

그에게 미친 것 정신 없는 것,

삶은 또 부스스 깨어

쓰리당한 밤길의 여자처럼 멀거니

제 끝없는 사랑을 쳐다본다

하지만,

 

하늘이 두쪽 나도 나는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다

붙잡고 애걸해야 할 원수들이 있다

너는 모른다

 

황산벌 결사대처럼

제 몸에 병을 긋는 양아치처럼

좀비처럼

 

그는 다시, 술잔을 든다

 

---이영광, 나무는 간다, 창비시선 366, 창비(2013년 8월 30일)---

 

*제 몸에 술을 부어

 제 오줌통을 터트리던

 그는 다시,

 술잔을 들까?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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