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값
고증식
1924년생 서운(西雲)여사
서녘 서에 구름 운 자
간난이 분이 언년이 같은 이름들 앞에
언뜻 도력 높은 선사의 법명 같은
서역으로 향하는 구름의 달관, 어쨌거나
그녀의 팔십 평생을 한 단어로 줄여보라면
'낙천'
젊어 홀로 다섯 자식 거두면서도
살아생전 울음 한번 보인 적 없다
머리 싸매고 누운 걸 본 적도 없다
죽을 만치 속상하면
―내 칵 양잿물이라도 마셔야지, 한마디면 끝
그 말에 잠 설치다 깨어나 보면
새벽같이 벌써 밭에 나가 엎드렸던 그녀
먼 친정 조카의 빚보증으로
논 닷마지기 하루아침에 날리고서도
―에휴 불쌍한 눔 어디 가 밥이나 먹고 댕기는지
코 한번 팽 풀면 끝
언젠가 엄마 이름은 왜 그럴듯해, 물었더니
―그럴듯하긴 제길,
니 외할부지 또 딸이라고 서운해서 그랬다더라
아 다른 건 다 두고라도 그 천성 하나는
꼭 물려받고 싶었던
서녘 서에 구름 운 자, 우리 허서운 여사
---고증식, 창작과비평 2019년 겨울호(통권 186호), 창비(2019년 12월 1일)---
*高 아무개 선생,
梁 아무개 선생,
술 작작 쳐드시오.
먼 하늘
구름보며 후회할 날 있으리니...
'시(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최영미, 꽃샘추위 (0) | 2020.01.07 |
---|---|
조정인, 키스 (0) | 2019.12.12 |
안진영, 하윤이 괴구리 (0) | 2019.11.29 |
임혁희, 아가 학교 (0) | 2019.11.03 |
유강희, 낙숫물 (0) | 2019.10.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