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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

고증식, 이름값

by kimbook 2019. 12. 11.

이름값


고증식


1924년생 서운(西雲)여사

서녘 서에 구름 운 자

간난이 분이 언년이 같은 이름들 앞에

언뜻 도력 높은 선사의 법명 같은

서역으로 향하는 구름의 달관, 어쨌거나

그녀의 팔십 평생을 한 단어로 줄여보라면

'낙천'

젊어 홀로 다섯 자식 거두면서도

살아생전 울음 한번 보인 적 없다

머리 싸매고 누운 걸 본 적도 없다

죽을 만치 속상하면

―내 칵 양잿물이라도 마셔야지, 한마디면 끝

그 말에 잠 설치다 깨어나 보면

새벽같이 벌써 밭에 나가 엎드렸던 그녀

먼 친정 조카의 빚보증으로

논 닷마지기 하루아침에 날리고서도

―에휴 불쌍한 눔 어디 가 밥이나 먹고 댕기는지

코 한번 팽 풀면 끝

언젠가 엄마 이름은 왜 그럴듯해, 물었더니

―그럴듯하긴 제길,

니 외할부지 또 딸이라고 서운해서 그랬다더라

아 다른 건 다 두고라도 그 천성 하나는

꼭 물려받고 싶었던

서녘 서에 구름 운 자, 우리 허서운 여사


---고증식, 창작과비평 2019년 겨울호(통권 186호), 창비(2019년 12월 1일)---


*高 아무개 선생,

 梁 아무개 선생,

 술 작작 쳐드시오.


 먼 하늘

 구름보며 후회할 날 있으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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