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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

정진규, 삽

by kimbook 2007. 6. 7.

 

정진규

 

  삽이란 발음이, 소리가 요즈음 들어 겁나게 좋다 삽, 땅을 여는 연

장인데 왜 이토록 입술 얌전하게 다물어 소리를 거두어들이는 것일

까 속내가 있다 삽, 거칠지가 않구나 좋구나 아주 잘드는 소리, 그

러면서도  한군데로 모아지는 소리, 한 자정子正에 네 속으로 그렇게

지나가는 소리가 난다 이 삽 한 자루로 너를 파고자 했다 내 무덤 하

나 짓고자 했다 했으나 왜 아직도 여기인가 삽, 젖은 먼지 내 나는

내 곳간, 구석에 기대 서 있는 작달막한 삽 한 자루, 닦기는 내가 늘

빛나게 닦아서 녹슬지 않았다 오달지게 한번 써볼 작정이다 삽, 오

늘도 나를 염殮하며 마른 볏짚으로 한나절 너를 문질렀다

 

   ---現代文學 2006년 1월호(통권 613호)---

 

 *삽질 해본 지도 오래다. 삽, 삽, 삽, 삽, 삽. 참 좋다.

  하지만 '삽질'은 중단하지 못한 모양이다.

  '오달지게' 한번 써보지도 못하고,

  내 '정다운 인연'들에게 해댄 '삽질'이 나를 염(殮)하게 한다.

 

  저 논둑에 꽂아놓은 삽 넘어지는 모습이 보인다. 

  내가 뛰어가서 잡아야하나? 

 

  언젠가 나도 삽처럼 넘어질 것이다.

  누가 나에게 최후의 '삽질'을 해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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