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괴담
고영민
난 강남의 목화예식장에서 결혼식을 올렸는데 관광
버스를 대절하여 시골에서 올라온 당신은 끝동 푸른
한복을 화사하게 차려입고 목화꽃처럼 나타나셨는데
폐백을 드릴 때 당신을 업고 나는 首尾山을 돌듯 넓은
방을 한 바퀴 돌고, 돌고, 돌았는데 사모관대를 걸친
막내아들이 늙은 당신을 업고 있는 그 사진을 어머니
는 추억처럼 좋아하셨는데 세상뜨시기 전까지 안방
낡은 유리액자에 꽂혀 즐겁게 업혀 있었는데 당신이
돌아가신 지 5년, 오늘 아침엔 세 살 난 딸이 나를 유
심히 쳐다보며 한마디를 건네는데 아빤 왜 매일 어떤
할머니를 업고 있어, 슬그머니 등 뒤를 넘겨다보면 아
무것도 보이지 않는데 추스러 올려도 무거워 자꾸만
흘러내리는 아, 나의 업힌 어머니인데
---고영민, 악어, 실천문학의 시집156, 실천문학사(2005년 8월 30일,초판)
*난 어머니를 업어드린 적이 없다.
'뇌졸중'으로 쓰러지신 지도 3년째인가.
'반쪽은' 나를 닮아 어머니 마음대로 하시지도 못하시는데...
늦은 귀가시간에는 방바닥에 이불을 깔아놓아
어머니 마음처럼 따뜻한 방바닥이 나를 기다리는데...
나도 어머니를 업은 사진 한장 찍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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