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병실
서상영
세숫대야에 떨어지는 붉은 코피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소녀처럼
봄은 왔다, 나의 병실로
너무도 화사하게 봄은 왔다
지난 겨울은 지독히 딱딱하여
어떤 아픔도 감히 깨물 수가 없었다
하얀 공간의 뼈가 검은 밤 내내
몰아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 겨울은, 맘을 삭이는
여자처럼 둥글게 쓰러졌다
그렇게 봄은, 나의 병실로
울고 있는
겨울의 뒷모습으로 왔다
병실을 청소해야지, 묵은 약과
두꺼운 일기를 걷어내어
나의 병이 편안해질 수 있도록
웃자란 슬픔의 가지도 잘라내고
작은 병에선 풀씨들을 풀어놓아
나의 병이 아름답게 꽃피울 수 있도록
너무도 화사하게 봄은 왔다
---서상영, 꽃과 숨기장난, 문학과지성 시인선 317, 문학과지성사(2006년 4월 28일)---
*봄은 갔다.
'웃자란 슬픔의 가지'를 자르기도 전에
'여자처럼 둥글게 쓰러진'건 바로 나다.
나는 또다시 병실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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