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저편으로부터 그가
강정
잠 못 드는 몸을 거슬러
잠깐 앉았다 떠나려 하는 바람의 몸통을 잘라
죽은,
죽은 것처럼 빛이라곤 없는
당신의 얼굴을 꺼낸다
어둠이 스캔하는 시간의 잔해들
당신의 기별로 산산조각난 내 얼굴이 멀리 등을 돌리며
인기척을 감추는 동안
당신은 서서히 몸을 움직여
잠 못 드는 내 몸 깊은 곳에 검은 등불로 반짝인다
죽은,
죽은 것처럼 빛이라곤 없는 내 눈이
태양의 먼 귀퉁이에서 속삭이는
과거의 속살들을 발라
안개를 뚫고 일어나는
푸른 넋들이 모이를 주는 동안
봄이 왔다고,
꿈이 비로소 당신 생의 전면에서 피를 흘린다고,
밤새 눈자위를 실룩거리던 바람이
자줏빛 새벽이슬을 머금고는
내 자리에 대신 누운 당신의 그림자를 오래도록 꿰맨다
잠 밖에서 서성이던 그가 비로소 나를 대신해
당신의 풍성한 기억 속에
그릴수록 지워지는,
미래의 지도를 완성했다는 기별이다
---강정, 들려주려니 말이라 했지만,, 문학동네(2006년 1월 5일)---
*"왜냐하면 시의 형식은
의미의 주체와 존재의 주체를
모두 수용하는 분열의 장치이기도 하니까.
그런 것이니까. 그러니까 그러니까, ......그니까."
---함성호의 발문 끝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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