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최영철
내 우산이 찢어져 앙상한 살뿐이다
그런 꼴로 한참을 걸어왔다
비 맞고 홀로 가는 사람 따라
젖은 길 말벗이 되고자 했다
그 사람 우산 없이도 제 길을 가고
혼자 덮어쓰고 온 터진 가죽 사이
초라한 달이 비친다
나 하나도 위안이 아닌 나
그 사람 돌아본다
왜 자꾸 비가 오지, 중얼거리며
천둥 번개 치는 길을 먼저 간다
어린 나무 한 그루 아직 거기에 있다.
---최영철, 일광욕하는 가구, 문학과지성 시인선 240, 문학과 지성사(2000년 3월 25일)---
*저 배롱나무는 "정경섭" 나무다.
재학시절에 나를 무척 따르던 경섭이.
졸업식 때는 銀반지를 주던 이 자식이
통성명도 못한 病名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 녀석은 잘 있겠지만
젖은 길 말벗도 못한
내가 이제 한 그루 어린 나무다.
미안하다, 경섭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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