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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

김소연, 바다를 보러 가야겠다 수많은~~~

by kimbook 2007. 6.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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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다를 보러 가야겠다 수많은 그를 수장하고 돌아선 바다  보러 가야겠다

 내 눈물로 그 수위를 높였던 동해 바다에 가야겠다 먹장구름 삼키며 사나

운 파도가 나를 삼키며 나는 세상를 삼키며 세월을 물쓰듯 썼던 그 시절들

보러 가야겠다

 

김소연

 

 내가 신화 속에 존재할 먼 미래에  대해 궁리하다가,  나는 미래를 발길로 찼고 현재

와 결별했다 딱딱한  의자에 앉아서  생소한 창밖 응시하다보면, 고스란히 실내를 되

비추는 창이 보이고 그곳엔 내가 허공의 실내에 화분처럼 놓여 있기도 하다 멀리 한

줄로  세워진 아파트  불빛이 보인다  이 빠진 불빛 한 군데가 마저 줄을 채운다 거기

사람이 왔나보다 여기도 사람이 있다

 

 창문을 흔들어대는 낯설고 억센 바람, 그, 억센 손아귀와 싸우다 실내에서 지쳐버린

이 영혼 하얗게 타고 있다 가벼운 입김에도 휙,  흩어지게 될 것이다  나는 온 청춘을

저속하고  불결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거적 같은 몸뚱이를 아무데나 두고 자버렸

고 내키는대로 아무 꿈이나 불러들여 가위눌렸었고 바퀴벌레 우글거리는 헌 집처럼

오래오래 나를 비워두웠었다 때가 온 것인가, 선회하는 멸망이 보이고 아주 달게 저

무는 세기말이 보이고 나는 늙어가기보다는 꺾여가고 있음을, 헐렁헐렁한 제스처로

변두리 골목을 어슬렁대고 있음을,  세상의 가십거리를 들어주다  내뱉은 욕설에 뚝

부러지고 있음을 알게 되었고 그것은 기분 좋고 바람직한 일이 되어버렸다

 

 공명되는 악기보다 더 비었으면 비었지,  싶은 마음들이 백화점 세일 축제에 붙들린

풍선으로 매달려 있고, 아직 세상에 내건 문패가 없음과 그 문패가 마모될, 마모되어

다 지워질  세상에 대해  나는 기립 박수를 보냈고,  가장 좋은 것에 대해서 한마디도

발설하지  않은 채  내가 하루,  하루를  살라내고  있음을,  꿰매 입지  않고 찢어 입는

시대에 태어났음을, 뒷산에서 희미하게 들려오는 약수 행렬의 야호, 를 점호로 삼는

야행성들이 컴퓨터 통신 대화방에서 불개미처럼 득실거리고 있음을 못내 만족스러

워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여어,  우리는  전통이란  허깨비의  발뒤꿈치를  잠시

보았을 뿐,  그 허상을  숭배한  한때는  우리  인생의  양념이었을 뿐,  우리는 역사를

배반하기는커녕 구경조차 못 했으니 현실과는 자연스럽게 결별하는 것임을

 

 내 삶의 목적은 천년 동안 잠을 자는 것,  나의 수면은 시대에 대한 예의이며 자비

이다 사나운 파도가 지형을 바꾸며 나의 수면을 깨우지 않은 채 모든 것을 훼손할

것을 꿈꾼다

 

---김소연, 극에 달하다, 문학과지성 시인선 192, 문학과지성사(1996년 12월 10일)---

 

*바다를 보러 가야겠다.

 그 바다에 가면

 훼손되지 않은 사랑을 가진 사람이 있다.

 

 바다를 보러 가야겠다.

 강릉 바다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