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위를 옮기다
문신
텃밭 한 뙈기 얻어 고랑을 쳤다
고랑을 치며 북을 돋우다보니 텃밭 모퉁이에 박힌 바위
가 걸렸다
배추 대여섯 모종이나 고춧대 열 주쯤은 족히 묻을 수
있는 땅이었다
백 년을 가도 뭐하나 열리지 않을 바위, 파내버리자고
빙 둘러 삽을 넣었다
그럴수록 바위는 이를 악물고 깊은 곳으로 뿌리를 내
렸다
한나절에 작파!
헛심만 빼고 바위에 걸터앉아 고랑을 세어보았다
바위를 피해 두어 줄은 고춧대를 세우고 나머지 고랑에
는 배추 모종을 옮겨도 살림에는 넉넉할 것 같았다
텃밭 모퉁이를 바위에 양보하고 보니 바위를 파낸 흙
더미가 바위 안쪽으로 두둑을 이루고 있었다
한나졸절 삽질에도 꿈쩍 않던 바위가 텃밭 바깥으로 옮겨
가 있었다
---문신, 물가죽 북, 애지시선 023, 애지(2008년 2월 10일)---
*'대통령'이
이 詩를 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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