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河馬)
강회진
뜬금없이 당신은 하마가 보고싶다 말했다 끝물의 벚꽃이 흩
날리는 날 손과 손을 스치며 동물원에 간다 봄볕 내려와 따글
따글 뒹굴고 있는 나무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우리가 한 일
이라고는 두어 시간동안 하마를 바라보는 게 전부였다 무리지
어 생활한다던 하마는 심드렁 홀로 집을 지키고 있다 이따금
종종종 소풍 나온 유치원생들이 하마야, 하마야 악을 쓰며 불
러댄다 그러거나 말거나 하마는 비대한 몸 뒤척이며 누워만
있다가 가끔 쫑긋 세워진 아이 손바닥만한 귀를 털어낼 뿐
끙, 돌아눕는 하마의 엉덩이 쪽으로 한 아이가 주먹을 던진다
오래토록 하마를 바라보던 당신의 눈이 고요해지는 것을 본다
먼먼 생 언젠가는 이번 생을 인정할 수 있을까 아무런 이유도
알 수 없이 방바닥을 치며 통곡하던 날들을 용서할 수 있을까
뜨겁게 거절하던 당신을 다음 생에서도 사랑한다 말할 수 있
을까 어쩌면 당신과 나는 무리를 이탈한 하마인지도 모를 일
이다 불온한 사랑을 꿈꾸는, 하마하마한 우리는 세상이 뭐라
주먹을 먹여도 가만히 두 귀 털어내며 홀로 고요해지고 싶은
건지도
---강회진, 하마(河馬), 다층 2009년 여름호(42호), 다층(2009년 7월 1일)---
*나는
무리에서 쫓겨난 '하마'다.
가볍게 '털어낼' '두 귀'도
나의 이름을 소리쳐 불러줄 아이들도 없다.
그래서,
'먼먼 생'은 더더욱 없다.
'시(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조용미, 타인의 삶 (0) | 2009.10.01 |
---|---|
양성우, 오해 (0) | 2009.09.29 |
유안진, 신이 신발인 까닭 (0) | 2009.09.22 |
윤제림, 가정식 백반 外1 (0) | 2009.09.17 |
문신, 바위를 옮기다 (0) | 2009.09.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