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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

강회진, 하마(河馬)

by kimbook 2009. 9. 27.

 하마(河馬)

 

 강회진

 

 뜬금없이  당신은 하마가  보고싶다 말했다 끝물의 벚꽃이 흩

날리는  날 손과 손을 스치며 동물원에 간다 봄볕 내려와 따글

따글  뒹굴고 있는 나무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우리가 한 일

이라고는 두어 시간동안 하마를 바라보는 게 전부였다 무리지

어  생활한다던 하마는 심드렁  홀로 집을 지키고 있다 이따금

종종종 소풍 나온 유치원생들이 하마야,  하마야 악을 쓰며 불

러댄다  그러거나  말거나  하마는 비대한 몸 뒤척이며 누워만

있다가  가끔 쫑긋  세워진  아이 손바닥만한  귀를 털어낼  뿐

끙,  돌아눕는 하마의 엉덩이 쪽으로 한 아이가 주먹을 던진다

오래토록 하마를 바라보던 당신의 눈이 고요해지는 것을 본다

먼먼 생 언젠가는  이번 생을 인정할 수 있을까 아무런 이유도

알 수 없이 방바닥을  치며 통곡하던 날들을 용서할 수 있을까

뜨겁게 거절하던  당신을 다음 생에서도 사랑한다  말할 수 있

을까 어쩌면 당신과  나는 무리를 이탈한  하마인지도 모를 일

이다  불온한 사랑을 꿈꾸는,  하마하마한 우리는 세상이 뭐라

주먹을  먹여도 가만히 두 귀  털어내며 홀로 고요해지고 싶은

건지도

 

---강회진, 하마(河馬), 다층 2009년 여름호(42호), 다층(2009년 7월 1일)---

 

*나는

 무리에서 쫓겨난 '하마'다.

 

 가볍게 '털어낼' '두  귀'도

 나의 이름을 소리쳐 불러줄 아이들도 없다.

 

 그래서,

 '먼먼 생'은 더더욱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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