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이선식
나 이제
세월을 그냥 보내진 않으리
내게 왔다가는 세월
그가 비록 길손이라 할지라도
나 세월을 빈손으로 보내진 않으리
언제나 낯선 손님으로 찾아오는
그의 빈 지게에 푸성귀도 얹어주고
내 영혼의 햇살로 영근
햇나락 찧어 실어주고
무엇보다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은
인색했던 나의 사랑
그의 등짐 위에 풀꽃처럼 꽂아주리
내게 왔다 텅 빈 소쿠리로 돌아가던―
내 아버지의 쓸쓸한 뒷모습을 닮은―세월
그 세월이 다시 오면
지나간 길손에 세간살이 다 내주고
아무것도 더는 줄 것이 없을 때
그땐
내 따라 나서서 먼길 길동무로
저 언덕을 함께 넘으리
---이선식, 시간의 목축, 시작시인선 0130, 천년의시작(2011년 5월 30일)---
*아무 것도 주지 못했고,
아무 것도 줄 것이 없다.
미안하다.
'먼길'은 아닐지라도
'언덕'을 함께 넘었던,
'세월'아, 많은 사람아.
*39쪽, '세상에 없는 의자' 中
4聯 3行 '그가 떠나고 아를의 좁은 방에 남겨진 의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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