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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

이선식, 동행

by kimbook 2011. 12. 1.

동행

 

이선식

 

나 이제

세월을 그냥 보내진 않으리

 

내게 왔다가는 세월

그가 비록 길손이라 할지라도

나 세월을 빈손으로 보내진 않으리

 

언제나 낯선 손님으로 찾아오는

그의 빈 지게에 푸성귀도 얹어주고

내 영혼의 햇살로 영근

햇나락 찧어 실어주고

무엇보다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은

인색했던 나의 사랑

그의 등짐 위에 풀꽃처럼 꽂아주리

 

내게 왔다 텅 빈 소쿠리로 돌아가던―

내 아버지의 쓸쓸한 뒷모습을 닮은―세월

그 세월이 다시 오면

지나간 길손에 세간살이 다 내주고

아무것도 더는 줄 것이 없을 때

그땐

내 따라 나서서 먼길 길동무로

저 언덕을 함께 넘으리

 

---이선식, 시간의 목축, 시작시인선 0130, 천년의시작(2011년 5월 30일)---

 

*아무 것도 주지 못했고,

 아무 것도 줄 것이 없다.

 

 미안하다.

 

 '먼길'은 아닐지라도

 '언덕'을 함께 넘었던,

  '세월'아,  많은 사람아.

 

*39쪽, '세상에 없는 의자' 中

  4聯 3行 '그가 떠나고 아를의 좁은 방에 남겨진 의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