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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

이장욱, 특성 없는 남자

by kimbook 2011. 12. 16.

   특성 없는 남자

 

   이장욱

 

   이 사람은 어디서 태어났다. 정각과 정각 사이에서. 공과

금 고지서와 함께.

   누군가 이 남자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목젖이나 귀청 같은 것.  부르르 떠는 것. 그것만으로 이

남자를 판단한다면,

   모든 것이 진짜다.

 

   언제나 절정,

   그것이 이 남자다. 얼굴의 점이나 중고자동차 역시.

   잇새로 찍, 뱉은 침이 도달하는 클라이맥스와 함께.

   거기에 약속장소도 있고

   죽음의 순간도 있겠지만,

 

   히말라야에는 가보지 못했다. 히말라야는 너무 아름다

워서,

   아름다워서,

   차라리 백화점 앞길을 걸어간다. 오늘은 백화점 앞길에서,

 

   그의 그림자가 당신의 그림자와 겹치는 순간.

   그것은 어떤 종류의 절정인가?

   그의 무엇이 흔들렸나?

   흔들렸나?

 

   부르르  떨리는 그것을  감정이나 세계관이라고 할 수는

없다. 순식간의 변화라면 신호등이나 구름이 전문가. 횡단

보도는 지진에만 반응한다.

 

   어디서 태어나서 누군가인 남자가,

   자신도 모르게  뒤를 돌아보았다.  남자의 입이 벌어지면

상상해본 적 없는 세계가 쏟아질 거야. 그것은 비명이 아니

다. 열대어가 아니다.

   신제품 설명회도 아니다.

 

   부르르 떨리는 그것이 아니라면,

   당신은 그를 지나쳤을 것이다. 요란하게 싸이렌이 울리고,

민방위훈련이 시작되어도 마찬가지.

 

   한 남자가 당신에게 나타나고, 한 남자가 당신에게서 사

라지고,

   내일의 위치가 바뀌었다.

   당신은 지금 막,

   당신을 지나간 한 남자의 특성을 이해하였다.

 

*특성 없는 남자 : 로베르트 무질

 

---이장욱, 생년월일, 창비시선 334, 창비(2011년 8월 12일)---

 

*'당신은 지금 막,

  당신을 지나간 한 남자의 특성을 이해'하셨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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