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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

정복여, 은밀한 봄

by kimbook 2012. 9. 10.

은밀한 봄

 

정복여

 

한낮이구요, 풀밭이에요

여기, 붉은 흙알갱이 소복하다구요

누군지 몸을 구부려

땅을 힘껏 파낸 거지요 이 구멍,

곱고 동그란 흙알들을 품고 있었을

이 뜨거운 품이

자꾸만 무언가 부르고 있어요

안으로 길게 길을 낸 발자국 보여요

누군가 바쁘게 몸을 감춘 듯한 은밀한 대문은

언저리 사방 햇살을 모두 빨아들이며

깊게 들이쉬는 절절함이죠

가만히 귀 기울이면 아주 오래전

그 속에 잘 살았던, 어떤 이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구요

어둠을 밖으로 퍼내어 햇살로 버무리는

그런 손도 얼핏 보이는 듯해요

그래요, 공기도 동동거리며

바쁘게 들고나고 있어요

 

---정복여, 체크무늬 남자, 창비시선 319, 창비(2010년 9월 20일)---

 

*은밀함이 참, 좋다.

 봄도 참, 좋다.

 

 시인의 이름,

 정복여,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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