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밀한 봄
정복여
한낮이구요, 풀밭이에요
여기, 붉은 흙알갱이 소복하다구요
누군지 몸을 구부려
땅을 힘껏 파낸 거지요 이 구멍,
곱고 동그란 흙알들을 품고 있었을
이 뜨거운 품이
자꾸만 무언가 부르고 있어요
안으로 길게 길을 낸 발자국 보여요
누군가 바쁘게 몸을 감춘 듯한 은밀한 대문은
언저리 사방 햇살을 모두 빨아들이며
깊게 들이쉬는 절절함이죠
가만히 귀 기울이면 아주 오래전
그 속에 잘 살았던, 어떤 이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구요
어둠을 밖으로 퍼내어 햇살로 버무리는
그런 손도 얼핏 보이는 듯해요
그래요, 공기도 동동거리며
바쁘게 들고나고 있어요
---정복여, 체크무늬 남자, 창비시선 319, 창비(2010년 9월 20일)---
*은밀함이 참, 좋다.
봄도 참, 좋다.
시인의 이름,
정복여,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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