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곳
문태준
오늘은 이별의 말이 공중에 꽉 차 있다
나는 이별의 말을 한움큼, 한움큼, 호흡한다
먼 곳이 생겨난다
나를 조금조금 밀어내며 먼 곳이 생겨난다
새로 돋은 첫 잎과 그 입술과 부끄러워하는 붉은 뺨과 눈웃음을 가져가겠다고 했다
대기는 살엄음판 같은 가슴을 세워들고 내 앞을 지나간다
나목은 다 벗고 다 벗고 바위는 돌 그림자의 먹빛을 거느리고
갈 데 없는 벤치는 종일 누구도 앉힌 적이 없는 몸으로 한곳에 앉아 있다
손은 떨리고 눈언저리는 젖고 말문은 막혔다
모두가 이별을 말할 때
먼 곳은 생겨난다
헤아려 내다볼 수 없는 곳
---문태준, 먼 곳, 창비시선 343, 창비(초판 3쇄, 2012년 3월 16일)---
*오늘 밤(5월 15일),
7시 35분쯤,
그의 목소리가 TV에서 흘러 나왔다.
'먼 곳'이었다.
'시(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조철식, 사랑 (0) | 2013.06.04 |
---|---|
김용택, 섬진강 31 (0) | 2013.05.29 |
고영민, 마흔 (0) | 2013.05.04 |
김수복, 잠깐만요 (0) | 2013.04.18 |
김점용, 너도바람꽃 (0) | 2013.04.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