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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

문태준, 먼 곳

by kimbook 2013. 5. 11.

먼 곳

 

문태준

 

오늘은 이별의 말이 공중에 꽉 차 있다

나는 이별의 말을 한움큼, 한움큼, 호흡한다

먼 곳이 생겨난다

나를 조금조금 밀어내며 먼 곳이 생겨난다

새로 돋은 첫 잎과 그 입술과 부끄러워하는 붉은 뺨과 눈웃음을 가져가겠다고 했다

대기는 살엄음판 같은 가슴을 세워들고 내 앞을 지나간다

나목은 다 벗고 다 벗고 바위는 돌 그림자의 먹빛을 거느리고

갈 데 없는 벤치는 종일 누구도 앉힌 적이 없는 몸으로 한곳에 앉아 있다

손은 떨리고 눈언저리는 젖고 말문은 막혔다

모두가 이별을 말할 때

먼 곳은 생겨난다

헤아려 내다볼 수 없는 곳

 

---문태준, 먼 곳, 창비시선 343, 창비(초판 3쇄, 2012년 3월 16일)---

 

*오늘 밤(5월 15일),

 7시 35분쯤,

 그의 목소리가 TV에서 흘러 나왔다.

 '먼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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