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詩)

고영민, 마흔

by kimbook 2013. 5. 4.

마흔

 

고영민

 

아내가 고구마를 삶아놓고

나갔다

젓가락으로 여러번 찔러본 흔적이 있다

나도 너를 저렇게 찔러본 적이 있지

잘 익었나, 몇번이고

깊숙이 찔러본 적이 있지

뜨거워

손을 바꿔 잡다가

괜한 내 귓불을 잡은 적이 있지

후후, 베어물고

입속에서 여러번 굴려본 적이 있지

벗겨 먹은 적이 있지

목이 메어 가슴을 두드리고

벌컥벌컥, 찬물을 들이켜고는

망연자실

내려다본 적이 있지

 

---고영민, 사슴공원에서, 창비시선 354, 창비(2012년 11월 30일)---

 

 *'망연자실 내려다본'

  고구마가

  내게 건넨 말이 있지.

 

  그 말을

  나, 마흔 즈음에 잊어먹었지.

 

   

 

 

'시(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용택, 섬진강 31  (0) 2013.05.29
문태준, 먼 곳  (0) 2013.05.11
김수복, 잠깐만요  (0) 2013.04.18
김점용, 너도바람꽃  (0) 2013.04.12
우대식, 안심  (0) 2013.04.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