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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

박철, 반

by kimbook 2019. 6. 27.


박철


반은 가운데인가요 천의 얼굴인가요 당신인지요

반에 관한 두가지 아픔이 있다

어머니 김포 들판 끝에서 피사리할 때

하늘이 뒤집히며 장대비 검게 쏟아져내릴 때

나는 물주전자 들고 들판의 반에 서 있었다

마을로 돌아가야 하나 내처 나가야 하나

달려가 엄마를 부르니 다리 밑에서 비를 피하던 어머니는

젖은 등짝을 치며 왜 왔느냐 탄식을 했

조금 더 커 한강에서 멱 감을 때

형들 따라 강의 가운데까지 가서 덜컥 겁이 나는 거라

그때 돌아올 힘으로 내처 강을 건넜어야 했다


번은 반을 지나쳐버렸고

번은 반을 돌아와

겁 많은 내 생은 그대로 솟대가 되고 말았

오늘 개화리 자귀숲으로 가는 길

이제 기어이 발길은 다시 반에 다다랐으니 

반은 절벽인가요 바람인가요

당신인지요

---박철, 없는 영원에도 끝은 있으니, 창비시선 420, 창비(2018년 4월 23일)---


*

이 반 중에 반은 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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