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채호기
맑은 물 아래 또렷한 조약돌들
당신이 보낸 편지의 글자들 같네.
강물의 흐름에도 휩쓸려가지 않고
편안히 가라앉은 조약돌들
소근소근 속삭이듯 가지런한 글자들의 평온함
그러나 그 중 몇 개의 조약돌은
물 밖으로 솟아올라 흐름을 거스르네.
세찬 리듬을 끊으며 내뱉는 글자 몇 개
그게 당신이 하고 싶은 말이었겠죠.
그토록 자제하려 애써도
어느새 평온함을 딛고 삐져나와
세찬 물살을 가르는 저 돌들이
당신 가슴에 억지로 가라앉혀둔 말이었겠죠.
당신의 의지로는 어쩔 수 없는
심장 속에 두근거리는.
---채호기, 손가락이 뜨겁다, 문학과지성 시인선 361, 문학과지성사(2009년 6월 5일)---
* 당신이 하고 싶은 말들이 빼곡한
많은 편지를 받았다.
답장은 쓰지 못했다.
심장이 뜨거워진다.
오늘은 무지개를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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