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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

채호기, 편지

by kimbook 2009. 8. 12.

편지

 

채호기

 

맑은 물 아래 또렷한 조약돌들

당신이 보낸 편지의 글자들 같네.

강물의 흐름에도 휩쓸려가지 않고

편안히 가라앉은 조약돌들

소근소근 속삭이듯 가지런한 글자들의 평온함

그러나 그 중 몇 개의 조약돌은

물 밖으로 솟아올라 흐름을 거스르네.

세찬 리듬을 끊으며 내뱉는 글자 몇 개

그게 당신이 하고 싶은 말이었겠죠.

그토록 자제하려 애써도

어느새 평온함을 딛고 삐져나와

세찬 물살을 가르는 저 돌들이

당신 가슴에 억지로 가라앉혀둔 말이었겠죠.

당신의 의지로는 어쩔 수 없는

심장 속에 두근거리는.

 

---채호기, 손가락이 뜨겁다, 문학과지성 시인선 361, 문학과지성사(2009년 6월 5일)---

 

* 당신이 하고 싶은 말들이 빼곡한

  많은 편지를 받았다.

 

  답장은 쓰지 못했다.

 

  심장이 뜨거워진다.

 

  오늘은 무지개를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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