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마리 낙타가 되어
박철
나도 누군가의 꿈에 한번쯤은 나타났겠다
전혀 예기치 않게 한 마리 낙타가 되어
무심히 사막을 건너고 있었겠다
그도 나처럼 일어나 여명에 기대어
이유 없이 먼 사막에 골몰했겠다
만남이란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닌 것
그저 사람 사이에 흐르는 향기와 같다
먼 이역을 떠돌 사람과 꿈속에서 옛이야기를 하다가
울컥하여 잠에서 달려나오니
눈물도 사람의 것이 아닌 듯 숨죽이며 흐르고
결국 세상을 이토록 아름답게 채우는 것은
사람과 사람의 눅진 냄새이려니
너와 나 그런 향기를 지닌 채
멀리 한평생 살다 가기도 했겠다
---박철, 불을 지펴야겠다, 문학동네(2009년 3월 2일)---
*아~,
'한평생 살다 가기'를...
나에게도
'눅진 냄새'가 있을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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