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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

박철, 한 마리 낙타가되어

by kimbook 2009. 8. 10.

한 마리 낙타가 되어

 

박철

 

나도 누군가의 꿈에 한번쯤은 나타났겠다

전혀 예기치 않게 한 마리 낙타가 되어

무심히 사막을 건너고 있었겠다

그도 나처럼 일어나 여명에 기대어

이유 없이 먼 사막에 골몰했겠다

만남이란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닌 것

그저 사람 사이에 흐르는 향기와 같다

먼 이역을 떠돌 사람과 꿈속에서 옛이야기를 하다가

울컥하여 잠에서 달려나오니

눈물도 사람의 것이 아닌 듯 숨죽이며 흐르고

결국 세상을 이토록 아름답게 채우는 것은

사람과 사람의 눅진 냄새이려니

너와 나 그런 향기를 지닌 채

멀리 한평생 살다 가기도 했겠다

 

---박철, 불을 지펴야겠다, 문학동네(2009년 3월 2일)---

 

*아~,

 

 '한평생 살다 가기'를...

 

 나에게도

'눅진 냄새'가 있을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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