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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

김윤이, 가을 아욱국

by kimbook 2011. 10. 18.

가을 아욱국

 

김윤이

 

방고래 딛고 어머니가 들여온 밥상

아욱국이 입안에서 달금하다

날마다 재봉틀 앞 허리 굽혀 앉은뱅이하다

가끔씩 펴고 일어나 가꾼 것들이다

동네 아낙들의 시샘 속에도 오가리가 들지 않고

푸릇하니 살이 올랐다

빈 북실에 실을 감듯, 두엄으로 길러낸 아욱잎엔

잎맥들이 팽팽하다

재봉틀 아래에서 올려진 밑실, 윗실과 합쳐져

손바닥 잎사귀마다 촘촘히 박혀 있다

날이 여물수록 어떤 마음이 엽맥에 배었다

누런 된장과 끓어올라 게게 풀어져

맛깔난 향 가득하다

얘야, 가을 아욱국은 사위 올까봐 문 걸고 먹는 거란다,

딸내미가 아귀차게 먹는 양을 보고 웃으신다

오랜만에 고봉밥을 비우며 바라보는 어머니 머리 위

올 굵은 실밥 길게 묻어 있다

어머니가 다듬은 아욱국은

뜨겁게 내게 넘어오는데

숟가락 든 손끝은 바늘에 박혀 아득하다

딴청 피우듯 묻은 실밥을 떼어내고

얼결에 집어든 열무김치를 무뚝 베어문다

매옴하게 번져오는 가을이 깊다

 

---김윤이, 흑발 소녀의 누드 속에는, 창비시선 328, 창비(2011년 3월 25일)---

 

*오늘 점심은

 구리 수택동 전주식당, '사장님 백반'에 아욱국을 나왔다.

 사장은 아니지만 사장처럼 먹었다.

 '잎맥'도 '옆맥'도 혀끝에 만져졌다.

 나는 '알타리김치'가 나오지 않아 '무뚝' 베어먹지 못했다.

 

 '아욱국'도 가을을 닮아

  '새우'가 단풍 들었다.

 

  '가을이 깊다.'

 

*10쪽, 詩, "꽃 필 자리" 17行,

 '긴긴 대상(隧商)의 행렬에서~~' 中 괄호 안 漢字 '隧商'은 '隊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