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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

박노해, 나무가 그랬다

by kimbook 2011. 10. 22.

 

 

나무가 그랬다

 

박노해

 

비바람 치는 나무 아래서

찢어진 생가지를 어루만지며

이 또한 지나갈 거야 울먹이자

 

나무가 그랬다

 

정직하게 맞아야 지나간다고

뿌리까지 흔들리며 지나간다고

 

시간은 그냥 흘러가지 않는다고

이렇게 무언가를 데려가고

다시 무언가를 데려온다고

 

좋은 때도 나쁜 때도

그냥 그렇게 지나가는 게 아니라고

뼛속까지 새기며 지나가는 거라고

 

비바람 치는 산길에서

나무가 그랬다

나무가 그랬다

 

---박노해,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느린걸음(2011년 2월 22일 초판 4쇄)---

 

 

*백두대간(닭목령 ~ 고루포기山 사이)에서 만난 상처 입은 소나무다.

 언젠가 산불이 났을 때 다른 나무들은 모두 숨졌지만

 소나무는 살아남았단다.

 

 이 소나무가 내게,

 "……

 ……

 ……" 라고,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