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가 그랬다
박노해
비바람 치는 나무 아래서
찢어진 생가지를 어루만지며
이 또한 지나갈 거야 울먹이자
나무가 그랬다
정직하게 맞아야 지나간다고
뿌리까지 흔들리며 지나간다고
시간은 그냥 흘러가지 않는다고
이렇게 무언가를 데려가고
다시 무언가를 데려온다고
좋은 때도 나쁜 때도
그냥 그렇게 지나가는 게 아니라고
뼛속까지 새기며 지나가는 거라고
비바람 치는 산길에서
나무가 그랬다
나무가 그랬다
---박노해,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느린걸음(2011년 2월 22일 초판 4쇄)---
*백두대간(닭목령 ~ 고루포기山 사이)에서 만난 상처 입은 소나무다.
언젠가 산불이 났을 때 다른 나무들은 모두 숨졌지만
소나무는 살아남았단다.
이 소나무가 내게,
"……
……
……" 라고,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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