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詩)

이지호, 돼지들

by kimbook 2012. 2. 19.

  돼지들

 

  이지호

 

   어느날 돼지들이 사라졌다.

   노란 우의를 입은  사나이가  피리를 불었다고 했다.  꽥꽥 노래를 부

  르고  춤을 추며 돼지들이 따라나섰다 했다. 돼지를 몰고 가는 바람의

  목관에 몇개의 구멍이 있었다고 했다. 그 구멍 속으로 돼지들이 산 채

  로 묻혔다고 했다.

 

   마을에 낯선 투명한 음계들이 떠다닌다.

   마을의 지하 군데군데가 팽창하고

   증오는 모두 네개의 발자국을 가졌다는 소문이 돌고

   막걸리잔에 붉은 핏발들이 가라앉았다.

 

   골목엔  안개가  돌아다니곤  했다고 했다.  그 위로 은화 같은 봄꽃이

  떨어지고 몇몇은 돼지발굽  모양이라고 우기기도 했다. 돼지들이 사라

  진 마을에  꽥꽥대는 고요가 돌아다닌다고 했다.  텅 빈 돈사마다 기르

  던 예의를 거두고 조용히 문을 닫았다고 했다.

 

   병든  발굽을  하고 봄이  지나가고  음계의 어는  쉼표에도 돼지들이

  살지 않는다.

   포클레인 몇대가 지방도를 따라 꽥꽥거리며 지나갈 뿐

   사라진 돼지들이

   우적우적 마을을 먹어치우고 있다.

 

   그리고 어제

   최씨 성을 가진 한 사내가 빈 돈사에 목장을 맸고 오늘 마을 입구로

  포클레인 한대가 천천히 들어오고 있다.

 

  ---이지호, 창작과비평 2011년 가을호(154호), 창비(2011년 12월 1일)---

 

  *'돼지들',

   '목맨 목장',

   '최씨',

   '포클레인',

   그리고, 나.

  

   모두 슬프다.

'시(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은, 소원  (0) 2012.02.21
김규린, 빈손 흐르는 강  (0) 2012.02.20
심언주, 수종사 삽살개처럼  (0) 2012.02.16
송경동, 지나간 청춘에게 보내는 송가 2  (0) 2012.02.11
조용미, 가을밤  (0) 2012.0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