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들
이지호
어느날 돼지들이 사라졌다.
노란 우의를 입은 사나이가 피리를 불었다고 했다. 꽥꽥 노래를 부
르고 춤을 추며 돼지들이 따라나섰다 했다. 돼지를 몰고 가는 바람의
목관에 몇개의 구멍이 있었다고 했다. 그 구멍 속으로 돼지들이 산 채
로 묻혔다고 했다.
마을에 낯선 투명한 음계들이 떠다닌다.
마을의 지하 군데군데가 팽창하고
증오는 모두 네개의 발자국을 가졌다는 소문이 돌고
막걸리잔에 붉은 핏발들이 가라앉았다.
골목엔 안개가 돌아다니곤 했다고 했다. 그 위로 은화 같은 봄꽃이
떨어지고 몇몇은 돼지발굽 모양이라고 우기기도 했다. 돼지들이 사라
진 마을에 꽥꽥대는 고요가 돌아다닌다고 했다. 텅 빈 돈사마다 기르
던 예의를 거두고 조용히 문을 닫았다고 했다.
병든 발굽을 하고 봄이 지나가고 음계의 어는 쉼표에도 돼지들이
살지 않는다.
포클레인 몇대가 지방도를 따라 꽥꽥거리며 지나갈 뿐
사라진 돼지들이
우적우적 마을을 먹어치우고 있다.
그리고 어제
최씨 성을 가진 한 사내가 빈 돈사에 목장을 맸고 오늘 마을 입구로
포클레인 한대가 천천히 들어오고 있다.
---이지호, 창작과비평 2011년 가을호(154호), 창비(2011년 12월 1일)---
*'돼지들',
'목맨 목장',
'최씨',
'포클레인',
그리고, 나.
모두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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