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
박철
다리 저는 금택씨가
축구공을 산 건 2주전이란다
근린공원 안에 새로 생긴 미니 축구장 인조잔디를 보고
벌초 끝난 묏등 보듯 곱다곱다 하며
고개를 외로 꼬기 석달 만이란다
평생 다리를 절고 늙마에 홀로된 금택씨가
문구점에 들어설 때 하늘도 놀랐단다
보는 이 없어 사람만 빼고 동네 만물은 모두
그가 의정부 사는 조카 생일선물 사는 줄 알았단다
삭망 지나 구름도 집으로 간 여느 가을밤
금택씨는 새벽 세시 넘어 축구공을 끼고 공원으로 가더란다
열시면 눈 감는 가등 대신 하현달에 불을 키더란다
금택씨 빈 공원 빈 운동장을 몇번 살피다가
골대를 향해 냅다 발길질을 하더란다
골이 들어가면 주워다 차고 또 차고 또 차더란다
그렇게 남들 사십년 차는 공을 삼십분 만에 다 차넣더란다
하현달이 벼린 칼처럼 맑은 스무하루
숨이 턱턱 걸려 잠시 쉴 때 공원 옆 5단지 아파트의
앉은뱅이 재분씨가 난간을 잡고 내려보더란다
어둠 속의 노처녀 재분씨를 하현달이 내려다보더란다
하현달을 금택씨 아버지가 내려다보며
보다보다 보름보다 훤한 하현은 처음이라고
달처럼 중얼거리더란다
---박철, 달, 창작과비평 2012년 가을호(통권 157호), 창비(2012년 9월 1일)---
*금택씨 홧띵!
재분씨도 홧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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